신학, 기독교

큐티하는 삶(4)

mystory-1014 2025. 3. 13. 09:36

< 마가복음 9:30-37 >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세상 영광보다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라 >

 

내용 관찰: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를 지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 주신다. 그러나, 제자들을 예수님의 말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누가 크냐라는 쟁점을 가지고 세상적으로 논한다. 예수님은 큰 자는 뭇 사람의 마지막이 되며,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시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영접하면 나와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연구와 묵상:

당시에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기대되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제자들은 메시야를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구원자로서가 아니라,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세상적인 인물로서 생각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다가올 십자가 고난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서로 누가 더 크냐라는 질문을 논할 뿐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제자들에게 큰 자는 세상의 부귀, 영화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자는 자임을 일깨워준다. 예수님과 그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며,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야말로 진정으로 큰 자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신다. 

 

느낀 점: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적인 기준으로 나의 풍요와 지위를 내세우며 큰 자로서 욕망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나를 구원하신 주 앞에서 나의 이익과 유리한 점을 먼저 생각하고 살지는 않았는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의 성공과 부귀, 영화보다는 주님의 자녀로서 그가 바라는 큰 자가 어떤 것인지 묵상해 본다. 나 자신보다는 타인을 섬기고, 우리 가족을 위해, 우리 공동체를 위해, 우리 나라를 위해 내가 섬길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정리해 본다. 큰 사명이 아니어도, 함께 할 수 있는 조그만 나눔과 마음의 공유가 소중함을 느낀다. 

 

결단과 적용:

주님, 오늘도 말씀 앞에서 저의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뜻을 따라 겸손하게 살아가는 마음을 허락하시고, 오늘 주신 말씀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섬기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세상의 영광과 이익으로 큰 자가 되려는 욕망보다, 오직 예수님 한 분으로 채워지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 안에서 소박하고, 겸손하며, 정결하게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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